태양의 화가 - 반 빈센트 고흐
내가 제일 좋아 하는 화가 = 고흐.

그의 화풍을 사랑하고 그의 색감들을 좋아한다.


작가명 : 고흐(Vincent Van Gogh)
활동년도 : 1853~1890
작가소개 :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Zundert에서 출생.
1890년 7월 파리 근처 Auvers-sur-Oise에서 사망.
고흐는 일반적으로 램브란트 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근대 예술에서 인상주의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모두 오직 10년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색의 개념을 파괴하고, 거친 화풍과 결국은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한 정신적 고통이 표현된 그런 작품이 전부이다.
그의 걸작중에 많은 자화상과 잘 알려진 The Starry Night(1889)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이 독일로부터 철수할 때 그들은 많은 독일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가지고 갔다. 이 명작들은 레닌그라드의 Hermitage의 지하에 숨겨졌다. 이것은 거의 반세기동안 소련 비밀이었다. 그들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다

년도별 흔적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작은 마을,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칼빈교의 목사였던 아버지의 장남으로 고흐 출생.
3명의 백부가 모두 화상이었다.

<1857년>
5월 1일: 고흐의 동생 테오도르 출생.
테오는 고흐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로 일생을 지냄.

<1861년>
마을 학교에 입학. 고흐의 소년기의 생활과 모습은 누이동생이 쓴 [회상의 고흐]속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1865년>프로빌의 기숙 학교에 입학 69년까지 다님.

<1869년>
7월 30일: 헤이그에 있는 구필 상회 브류셀 지점에 취직.

<1872년>
동생 테오와의 서신 왕래가 시작됨.

<1873년>
5월: 구필 상회 런던 지점으로 전임.
테오, 고흐의 전 근무처 구필 상회 브류셀 지점에 취직
6월: 하숙집 딸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하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음

<1874년>
10월: 파리로 여행 12월 런던으로 돌아옴

<1875년>
5월: 파리 본점으로 전임
구필 상회의 점원들 및 고객들과 자주 싸움. 이때부터 성서를 탐독

<1876년>
구필 상회에서 해고
4월: 런던으로 건너가 어학 조교사로 일함
7월: 멘지스트파의 설교 조수가 됨

<1877년>
1월~4월: 서점에 근무.
고흐의 신앙심이 한층 돈독해져 목사가 되기로 결심
5월 9일: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감

<1878년>
7월: 암스테르담 대학 신학부 입학 시험에 실패하자 실의에 찬 나머지 고향으로 돌아감

<1880년>
1월: 정처없이 길을 걷다가 문득 화가 브르통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그만 둠
생애 중 가장 어둡고 불안한 시기였던 그해 여름, 살아나갈 길은 화가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 동생 테오에게 장문의 편지를 씀

<1881년>
4월부터 연말까지 에텐의 부모 곁에서 지냄. 부친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함
케이라는 종매에게 실연당함
12월 말부터 헤이그의 종형 화가 모브를 방문, 화가가 되기위한 따뜻한 조언을 받으며 그림 제작에 착수

<1882년>
1월: 거리에 쓰러진 만취한 만삭의 창부 크리스틴을 데려와 모델로 쓰면서 20개월 동안 동거 생활을 함
이때 화가 브라이트네르, 와이센부르프 등과 친하게 지냄

<1883년>
9월~11월: 도렌트로 가서 포게벵에 머뭄
황무지와 석탄 구덩이의 작은 집, 마을과 일하는 농부 등을 그림
12월: 누에넹의 부친 곁으로 돌아가 목사관 창고에 아틀리에를 마련 그림제작과 독서에 열중

<1884년>
시골 여자 마르코트와 열애, 10세 연상인 그녀와 결혼할 것을 생각했으나, 마르코트의 집안의 반대로 실패하자 마르코트가 자살을 기도함

<1885년>
3월: 부친 사망
4월~5월: 정물, 농부, 직물기계, 두부 등 습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 제작
6월: <농부의 얼굴>을 제작
11월: 안트워프로 가서 아틀리에를 마련, 시내를 거닐면서 장의사, 책방 등을 보고 다님
루벤스와 만나 일본의 판화(우끼요에)를 처음으로 감상

<1886년>
2월: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나 그의 신경과민적인 성격이 현저하게 나타남
파리로 떠나 동생 테오의 아파트에서 잠시 같이 지냄
이때 고흐의 눈은 밝은 색채로 옮겨짐
6월: 코르몽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여기서 로트렉과 만남

<1887년>
인상파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음
술집에서 피사로, 드가, 쇠라, 시냑, 고갱 등과 만나 일시 점묘파의 기법을 받아들임
4월: 에밀 베르나르와 친교를 맺음
6월: 빙그 화랑에서 본 일본 그림에 충격을 받아 색채는 점점 밝아지고 양식도 완전히 변함
고흐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자화상, 정물화와 몽마르트르 풍경 등 2백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김
그해 여름 <레스토랑의 내부>를 제작

<1888년>
2월 20일: 로트렉의 조언을 받아들여 돌연 아를르로 여행. 레스토랑 칼레르에 정착
3월: 「예술가의 공동체」를 입안. 동생 테오와 편지 교환
4월: <꽃피는 나무 > <모브의 회상>을 제작
5월: 라마르티느가의 하얀 아틀리에가 있는 작은 '노란 집'으로 이사
6월: 지중해 연안에 여행

<1889년>
<귀를 자른 자화상> <양파가 있는 정물> <자장가>등 제작
12월: 환각 증상을 일으켜 주민들의 고발로 병원에 감금
3월: 시냑의 방문을 받음
4월 17일: 동생 테오 결혼
5월 9일: 아를르 근교의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 발작은 없었으며, 레이 박사의 진료를 받으며 자유롭게 입원 생활

<1890년>
1월: 동생 테오가 아들을 얻음
3월: 브류셀의 20인전에 출품한 <붉은 포도밭>이 4백 프랑에 팔렸는데, 이는 고흐 생애 중에 팔린 단 하나의 작품임
5월: 동생 테오를 만나기 위해 파리 방문길에 오름
그사이 <아를르의 요양원> <자화상> <요양원 사람들의 초상> 등 150여 점의 유화와 밀레, 들라크로와, 도미에, 렘브란트, 도레 등의 작품 30여 점을 모사
5월 21일: 오베르를 방문, 의사 가체트와 친교
7월 1일: 파리에 수일동안 머물면서 로트렉 등과 재회
오베르로 돌아와 <오베르의 교회>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등을 제작
7월 27일: 저녁, 권총 자살 기도. 가슴에 쏘았는데 즉사하지 않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옴
7월 29일: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둠
[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김

<1891년>
1월 25일: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 동생 테오 사망
오베르의 조그마한 고흐의 묘옆에 나린히 묻힘

<1962년> 빈센트 반 고흐 재단 창설

<1973년>
6월 2일: 율리아나 여왕에 의해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 설립



** 고흐자료 출처 :
http://blog.naver.com/siny9097
http://vangogh.dreamwiz.com
http://art-is.net/

by 미르에타 | 2005/03/05 10:30 | 나의 화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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